해외 한글문단과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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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 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1.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가. 디아스포라 공간의 한인문학

글로벌 빌리지, 국제화 시대 등의 용어가 등장하면서 그에 못지않은 빈도를 보이며 우리 곁에 다가온 말이 있다. 디아스포라다. 이 말은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분산 또는 이산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그 개념이 적용되는 원래의 영역은 유대인의 역사에 있다. 팔레스타인 외역에 살면서 고유의 종교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및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말이 유대인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지만, 그 적용 범주와 성격은 한국인의 역사·문화적 상황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다. 근대 이후 일본의 침탈 및 강제 점령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남북 분단과 해외로의 이주가 모두 디아스포라의 모형이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중국 및 구소련으로의 이주, 징용 · 징병과 관련된 일본으로의 이주, 궁핍한 생활 가운데 노동자 수출로 시작된 미국으로의 이주 등이 그렇다.
한민족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각기 다른 형식으로 축적된 남북한의 문학, 그리고 미국·일본·중국·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축적된 해외 한인문학을 통칭하여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이라 호명한다. 문학의 개념적 범주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서로 다른 문화권 내에 기식하고 있으면서도 독자적 문화의 성향을 이루고 있는 경계성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19세기 후반부터 한민족은 북방의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하여 ‘고려인’ 집단을, 중국으로 이주하여 ‘조선족’ 집단을 형성했다. 이들의 문단 구성 초창기, 구소련에 조명희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안수길이 있었다. ‘까레이스키’라 불리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1937년 강제 이주 이후 고려인 문단과 『고려일보』의 파란만장한 시대적 변화를 거치면서도 한글 창작을 계속했고 그 역사적 맥락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가 된 조선족은, 20세기 이후부터 문학 활동을 전개하여 문학동인 단체인 ‘북향회’를 구성하고 『북향』이라는 문예지를 발간하기 시작했으며 향토 문인으로 작가 김창걸과 시인 리욱 등을 배출했다.
고려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는 아나톨리 김이다. 그는 고려인의 정서를 배경에 두고 작품을 썼으나 한글로 쓰지는 않았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지금 6세대까지 이르렀고 거주민은 50만 명에 달한다. 1930년대 초반에 중국으로 건너간 강경애는 거기서 작품을 썼고, 최서해는 거기서 얻은 체험을 국내로 돌아와 작품화했다. 중국 조선족 문학을 대표할만한 작가로 꼽히는 『격정시대』의 김학철은 항일 투사였던 그의 자전적 기록을 소설에 담았고, 그와 같은 작품의 내용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한 전형이 되었다. 동시대의 주목을 받는 김철·남영전·조룡남·석화 등의 시인과 림원춘·리원길·박선석·최홍일 등의 작가를 선두로 하여 현재 활발하게 한글 문학이 창작되고 있는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거주민은 200만 명을 넘고 있다.
일본 ‘조선인’의 경우 영주자 통계를 6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외에 일본어로 작품을 써서 현지 문단에 널리 알려진 조선인 작가는 김달수·김석범·이회성·양석일·이양지·유미리·현월·가네시로 가즈키 등 많은 숫자가 있다. 미국 ‘한인’의 경우 현재 그 통계가 200만 명을 넘는다. 이곳 역시 한국어 사용 작가 외에 영문 작품으로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한인 작가는 김용익·김은국·노라 옥자 켈러·차학경·이창래·수잔 최·캐시 송 등 많은 숫자가 있다.
근래에 미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보이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피아노 티처』의 제니스 리,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이민진, 『에딘버러』의 알렉산더 지, 『마일즈 프롬 노웨어』의 문나미 등이 있다. 이들은 대개 미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후세대이며, 이민 1세대의 회고담이나 자서전적 글쓰기에 머물던 상황을 벗어나 다민족·다문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소통될 수 있는 인류 보편의 문제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 작가들은 생태적 환경 자체가 이중 언어와 이중문화의 경계에 걸쳐서 살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작품에서도 민족·국가·성별 등 여러 층위에서 경계인의 삶과 애환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은, 이처럼 다양한 작가들과 그 문학을 두루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도 여러 유형으로 ‘탈경계’의 경험을 표현하면서 디아스포라적 글쓰기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디아스포라적 언어 용법, 사건의 배경, 이야기 구조들이 단순한 글쓰기 방식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의 전통과 풍습을 가진 민족이 어떤 삶의 의식과 지향점을 가지고 그 가치를 표현하며 사는가를 증명하는 일이다. 동시에 이는 한 민족 내부의 일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공감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언급한, 세계 여러 지역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흐름과 작가·작품들은, ‘흩뿌려진 씨앗’의 존재 양식을 가졌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이중적인 삶의 어려움 속에서 경계인으로 살고 경계인으로서의 글쓰기를 수행해 왔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경우처럼, 디아스포라의 고난을 헤치고 꽃핀 이 문학적 성과들이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한국문학의 탈경계적 확산

문학의 ‘탈경계’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공간적 의미에 있어서 경계를 넘어서거나 무화(無化)하는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그럴 때 한국문학의 탈경계는, 한국의 작가들이 한국이라는 공간 환경을 넘어서 작품의 무대를 자유롭게 구성하는 사례를 말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활동하고 사건이 일어나며 그로 인해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곳이 그 공간이다. 이 공간의 형식은 작품의 내용을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작품 속에서의 공간은 그 작품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공간 확장, 탈경계의 논리와 창작방법을 같이하는 작가는 매우 많다. 아니 단순히 많은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시대를 거슬러 살펴보면, 한국문학의 대작가로서 2008년 타계한 박경리의 대작 『토지』에는 일제 강점기의 중국 만주 지방에까지 이야기의 무대가 확장되어 있다.
중진작가 황석영의 『바리데기』나 『심청』 같은 소설에서도 그러한 작품 환경의 탈경계적 확대를 볼 수 있다. 또 다른 중진작가 조정래의 『정글만리』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중국 비즈니스의 세계를 소설화한다는 창작 의도로 논란이 되었으나 근래에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다.
중견작가 김인숙의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와 『먼 길』, 김영하의 『빛의 제국』과 『검은 꽃』, 강영숙의 『리나』 또한 유사한 탈경계의 범례가 된다.
김인숙의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는,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 간 사람들에 관한 소설이다. 한 남녀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과 호주의 접경지대에 선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먼 길』은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간 세 젊은이의 파란 많은 월경(越境) 전후사와 그 마음의 내면풍경을 그렸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일제 강점기에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거기에 밝은 꽃길은 없었다. 그 삶의 어둡고 참혹한 상황을 작가는 ‘검은 꽃’이라 불렀다. 같은 작가의 『빛의 제국』은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스파이의 이야기다. 김영하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역사적 현실 속의 실존적 삶을 조명한다.
한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이래 여러 부면에서 은원(恩怨)이 얽혀 있었으나, 지금은 빠른 속도로 우호와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 문학에 있어서도 동남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작가 교류가 활발하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소설의 배경에 베트남을 도입하게 했다. 그 대표적 작가로 방현석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베트남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썼다. 그의 다른 작품 『존재의 형식』 또한 오랜 베트남과의 친화가 남긴 선물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탐색하는 작가 서하진은, 다양한 탈경계적 글쓰기의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뱃전에서』는 딸이 아버지와 동행하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기다. 그 고대 사원의 역사와 부녀의 과거사가 어우러지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아빠의 사생활』은 홍콩으로 밀월여행을 떠난 아빠와 그 애인을 미행하는 딸의 사흘간을 그렸다. 홍콩의 어지러운 풍광과 딸의 어지러운 심사가 교차하면서, 딸은 성장기의 한 과정을 통과한다. 『그림자 거리』는 미국 LA를 배경으로 정보 계통 고위직 출신 공무원의 도피성 출국에 관한 소설이다. 국가와 사회의 구조에 맞물려 있는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잘못 배달된 편지라는 모티프로 풀어나간다.
이 작가의 『슈거, 혹은 솔트』 또한 미국이 무대다. 여성 화자의 오랜 친구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공간 환경이 서로 얽혀서 등장한다. 상호 관계의 양상이 ‘슈거’인지 ‘솔트’인지 불분명한, 현대인의 복합적 의식이 그 가운데 있다. 이처럼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가들의 의식은, 현대사회 사람들의 성격인 다중정체성을 반영한다. 이것은 매우 복잡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당대적 삶의 양상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문학이 보여주는 탈경계적 글쓰기를 한국의 전체적인 역사 과정 속에서, 그리고 보다 구획화된 국가 단위를 두고 전제할 때, 이와 하나의 동류항으로 형성되는 또 다른 영역이 곧 앞의 항에서 검토한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중국·중앙아시아·일본·미국 등지에서 해외 교민인 한국인의 한국어로 된 창작활동, 그리고 한국인 후세대들의 현지어로 된 글쓰기를 모두 포괄하는 이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한국문학의 탈경계적 글쓰기와 상호 연동될 수 있는 문학 콘텐츠에 해당한다. 해외 한글문단은, 현지의 한글문학과 그 현지를 작품의 무대로 확산하는 탈경계의 한국문학이 조화롭게 만나는 새로운 문화마당이 되어야 한다.

다. 해외 한글문단의 현황과 과제

지금까지 필자가 방문하고 또 그 현황과 실상에 대해 탐색해 온, 한글로 창작이 이루어지는 해외 한글문단은 모두 네 지역에 걸쳐져 있다. 창작의 수량 및 분량이 많기로는 미국·중국이고 일본이 그 다음이며 중앙아시아의 경우는 한글문단이 점차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큰 도시들에는 대개 한인문학회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로스엔젤리스의 미주문인협회와 여러 문학단체들, 뉴욕의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시카고의 시카고문인회와 예지문학회,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일대의 샌프란시스코 한국문학인협회, 그리고 인근 캐나다의 캐나다문인회 등이 그 문학조직체의 이름이다. 이들은 매 계절 또는 매해 기관지를 간행하여 작품을 발표하며, 많은 숫자의 문인들이 직접 한국 문단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한국에서 작품집을 출간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동북삼성을 중심으로 회원 700명이 넘는 연변작가협회 등의 문학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연변문학』 『도라지』 『장백산』 『송화강』 같은 문예지를 간행하는 한편 많은 작가들이 중앙의 중국작가협회 회원으로 위촉되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의 우리말 창작은 조총련계의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약칭: 문예동)이 활동하다가 근래에 와서 조총련의 쇠퇴와 함께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으며, 민단 계열의 문인들이 우리말로 된 작품을 발표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그동안 중앙아시아고려문화인협의회란 문학단체가 활동하면서 여러 장르에 걸친 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이 산출되고 있었으나, 고려인 5~6세에까지 이어진 세대의 교체와 일상 언어의 변화로 말미암아 우리말 창작은 차츰 그 세력을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굳이 예를 들어 말하자면, 길이 열리고 여행이 끝나는 형국에 와 있다 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말 창작에 대한 범주적 당위성이나 지난날의 향수에 얽매여, 그것을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소멸을 예시하는 부정적 현상이라 볼 필요는 없다. 이는 한국문학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관련이 있으며, 그 논의에 있어서 보다 유연하고 확장된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디아스포라 문학이 재외 한국문학인 만큼, 그 ‘재외’라는 어휘가 표방하는 바와 같이 문학의 창작이 이루어지는 강역(疆域)에 대한 규정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한국 내에서 산출된 문학이 아니면 한국문학이 아니라는, 매우 경직된 ‘속지주의(屬地主義)’의 생각이 정설로 되어 있었다. 해외 동포의 숫자가 700만 명을 넘고,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가진 이에게는 선거권이 주어지는 실정이고 보면, 이제 속지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점차 빛을 잃고 있다. 동시에 디아스포라 문학의 창작자가 누구냐, 어느 나라 국적이냐를 분별하는 창작주체의 문제가 있으며 이를 ‘속인주의(屬人主義)’라 호명하는데, 이 또한 앞의 기준과 동일한 형편에 있다. 그 창작에 소용된 언어가 무엇이냐, 모국어이냐 아니냐를 분별하는 ‘속문주의(屬文主義)’ 또한 사정이 마찬가지다.
한국인이라는 법적 지위와 한국어라는 모국어에의 국한은, 기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형국을 초래할 수밖에 없도록 국제적 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작품의 중심 주제가 무엇이냐, 그 작품을 읽는 수용 층이 누구냐 같은 부대적인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외형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포괄적이며 활달하게 펼쳐지는 문학적 시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각기의 영역에 한국문학으로서의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가부’의 판단이 아니라, 각기의 영역에 한국문학적 요소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를 따지는 ‘정도’의 측정에 방점이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열린 시각의 접근과 가치 평가를 수행하는 일은, 이제는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글로벌 빌리지’라는 표현이 전혀 생소하지 않은 만큼, 오늘날의 인류 사회는 서로 다른 삶의 범주와 언어의 변별을 넘어 그 공동체적 연대가 지근거리로 좁혀지는 체험을 쌓아간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세계 각지에 산포되어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을 ‘민족문화’ 또는‘민족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연결고리로 하여 하나의 꿰미로 연계하는 일의 이해 및 공유가 우리 면전에 있다. 그것은 곧 디아스포라 문학의 미래지향적 가능성이요, 다음 세대로 이첩 되는 중차대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라. 한글문단 창작과 범주의 확장

이와 같은 논의에 앞서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해외 한글문학의 주체적 창작자인 문인들이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필자가 만난 해외 한글문단의 글 쓰는 이들이 이 대목에 관해 질문할 때, 필자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남은 글쓰기 기간을 통 털어 가장 가까이 있는 한 분이 감동 할 수 있는 글을 쓰라고, 그러면 누가 읽어도 감동할 글일 것이라고 말했던 터이다.
어려고 힘든 이중 언어 이중문화의 질곡 속에서, 온갖 문화충격을 견디며 우리말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고행과 수도의 과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삶의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다. 일찍이 중국 원대(元代) 시인의 시 한 구절,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은 이와 같은 상황에 적용되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논거한 사실 외에도, 해외 한글문학이 민족정체성이나 민족공동체의 오랜 과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역할이 또 하나 있다. 북한문학과의 교류 및 접촉을 포함하여 한국문학의 의미 개념과 그 영역을 보다 포괄적으로 확대하는 노력에 복무하고 기여하는 일이다. 이는 남북한문학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시대적 가치라 할 수 있는, 문화통합의 길을 예비하고 확장할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문학을 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거나 그 범주 안으로의 수용을 까다롭고 인색하게 점검하는 소아병적 인식을 청산하는 문제가 심도 있게 고려되어야 할 때다.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확대 수용하고 과감하게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한민족 문화권을 형성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범주의 한민족 문학을 한민족 문화권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면서 그 전반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통하여 민족 언어의 터전을 넓히는 한편 이 지구촌 시대, 국제화 시대에 대응하는 한국문학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한민족 문학사의 터전에 핀 귀한 꽃무리라면, 이들을 잘 가꾸고 그 명맥을 이어가도록 할 막중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한국문학’에 있다. 그 책임의식으로 한민족 문학 전반을 디아스포라적 차원에서 살펴볼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이 한민족 문화권의 논리와 의미망 가운데로, 해방 이래 한국문학과 궤(軌)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문학을 초치하는 일이다.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니와, 문학에 있어서 북한문학에 남북한 대결구도의 인식으로 접근해서는 그 접점을 마련하거나 문화통합의 전망을 설 정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현장 경험을 통해 이를 목도해 왔다.
이는 남북한 문학을 포함하여 중국 조선족문학,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 일본 조선인문학, 미주 한인문학 등 재외 한민족 문학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남북한 문학의 지위를 자리매김해 나가는 한편 이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문화적 연대라는 포괄성의 논리를 차입하여 남북 상호간의 대결구도를 희석시키자는 말이다. 그리하여 남북한 양자의 문학이 무리 없이 만나 악수하게 하고 그것의 대외적 확산을 도모하며 통일 이후의 시대에 개화(開化)할 민족문학의 장래를 예비해 보자는 새로운 제안인 것이다.
한민족 문화권이라는 부피가 큰 개념과 관련된 이 절실한 요청은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의식이 다원화되고 파편화되며 민족문화의 진로와 그 성취의 목표가 불투명해진 시대에 있어 우리가 문학의 이름으로 내거는 하나의 작은 등불이라 할 수 있다. 이 길은 남북한 문학, 더 넓게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교류와 연대를 내다보는 새 통로이며 정치나 국토의 통합에 우선하는 문화통합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통일 환경에 있어서의 문화적 인식이나 문학적 접근이 도외시 된다면 ‘통일대박’의 꿈도 아직 요원한 물거품의 구호가 될 수 있으며,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도 이름만 크고 실질이 없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2. 한글문학 세계화의 방향성

가. 한글, 세계화, 그 난제에 이르는 도정

한글의 원래 이름은 ‘훈민정음’이다.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국자(國字)의 제정이요 둘째는 국어음의 개신(改新)이다. 만약 이 15세기 중엽의 나랏말 제정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어떤 말과 글을 쓰고 있을까. 말은 그대로이겠으나 글은 여러 경로와 유형의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국어 음을 바르게 고치겠다는 의도에서 순경음 ㅂ이나 반치음 ㅅ 등이 사용되었지만, 이는 언어의 귀납법적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했다. 당대의 언중(言衆)은 언어학자나 언어정책 당국이 연역적으로 지시한 방향과 언어 용법에 따라 스스로의 언어를 조정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
3년간의 실험적 단계를 거쳐, 1446년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 우리는 지금 이 중세의 언어 문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한글이 매우 체계적이요 과학적인 구조를 가진 우수한 문자라는 뜻이다. 특히 근자와 같은 IT 만능의 시대에, 스마트폰으로 모음 3개를 사용하여 문자를 보내는 젊은 세대는 쉽사리 이 논리에 공감한다. 어떻게 그 짧은 기한에, 또 세종대왕의 재임 시기에 제정 및 반포와 사용이 가능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주요한 한 가지는 주창자 세종대왕이 당대 제일의 음운학자라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이해한다는 말은 곧 이를 두고 이른 것이다.
그런데 한글이 우수하고 자랑스러운 문자인 것과 이를 그리고 이를 통해 창작된 문학작품을 세계적으로 확신한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우선 왜 그 세계화가 필요하며 그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와 같은 목표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방안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 민족이 가진 고유의 문자로 기록된 문학과 문화는 정신적 영역은 물론 현실적인 삶의 영역에 있어서도 가장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파괴력을 가진다. 체홉의 『비애』나 모파상의 『진주 목걸이』,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생각해 보자. 구구한 설명이 없이도 쉽사리 문학의 위력을 납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고 이러한 논의도 거기에 방점이 있다. 세계화란 궁극적으로 자국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확산되어 가는 공간 개념을 말한다. 지리적 지정학적 국경이 있는 동시에 언어적 문화적 국경도 있다. 후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기실 매우 강고하고 배타적이다. 그러기에 언어의 강역을 확장해 나갈 대상국이 전제되고 자국과 대상국을 소통할 언어, 곧 통·번역 언어에 대한 확고한 접근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어 소통의 출발어와 도착어를 담당할 인력 및 제도가 총체적으로 연동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무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실질적 작용, 다시 말해 자국어 및 출발어 창작자의 작업실 사정이 어떠한가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한국문학은 물론 해외의 한글문학이 세계문학의 무대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매한가지다.

나. 추진 방안을 위한 노력과 새로운 통로

우리말과 글, 한글문학의 세계화는 이처럼 지난하고 복합적인 여러 과제를 한꺼번에 포괄한다. 이에 대해 그동안 관민이 함께 노력해 온 여러 모양의 전사(前史)가 있다. 비록 그 성과가 괄목할 만하지 않았더라도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대해(大海)를 이루는 건실한 지향점이 거기 있었다 할 것이다. 2006년 중국 연변에서 한글 시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한중 문학세미나가 있었는가 하면, 지난해 10월 미국 로스엔젤리스에서는 송강 정철의 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사례를 든 것이지만, 이와 같은 작은 노력들은 실제로 무수히 많다. 지난해 한글날 행사에서 국무총리가 한국어 열풍을 더 북돋우기 위해 한글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글을 ‘수출’한 처음 사례는 주지하다시피 2009년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표기문자로 도입한 것이었으나, 실상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2년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주(州)와 말라이타주가 한글을 모어(母語) 표기문자로 도입했다. 이는 찌아찌아족의 경우처럼 우리 언어 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엔 글로벌 콤펙트라는 국제기구에서 의욕을 갖고 진행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모양이 좀 다르다. 이러한 시도들은 미소하고 큰 영향력이 없어 보이나 처음부터 창대한 성취는 원래 없는 터이니 첫 술을 아끼듯 소중히 가꾸어 나갈 일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연구자 일각에서는 한글이 세계화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표현 기능의 부족, 글자의 단순성, 두음법칙의 강요 등이 세계화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한글이 모든 면에서 우수할 리 없다. 특히 국제화 시대의 공용어인 영어의 어법과 문법에 익숙해 있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한글은 발음이 어렵고 어휘가 복잡하며 어순이 난해한 언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가 출발점이다. 더욱이 그 언어를 운용하여 생산한 한글 문학작품은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작품을 두고 그 세계화에 있어서는 한글문학을 지배해 온 관료적 문화권력이 큰 장애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넘어 앞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파쇄할 수밖에 없다.
민족적 삶의 효용성과 관련하여 문학과 문화를 말할 때, 흔히 유대인의 민족 언어 문제를 사례로 든다. 유대인은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로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언어의 학습과 세습을 통해 그 민족적 고유성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2천년의 방황을 끝내고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말과 글이 광야 시대에 민족을 지탱하는 힘이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는 동안, 이 디아스포라의 개념이나 이스라엘 민족 출애굽의 역사는 그야말로 좋은 타산지석이었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 세계 각국으로 분산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상황은 이 용어가 우리의 민족적 운명을 증거 하는 유력한 어휘가 되도록 했다.
이러한 언어적 상황과 논리 속에서 남북한 문학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지역의 한민족 문학을 한 자리에 초치하는 방식을 두고, ‘2+4시스템’으로 규정해 온 것이 필자의 포괄적 문학관이다. 그 관점에 의거하여, 19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한민족 문학사’가 광복 70주년인 올해 출간을 목표로 진행 중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참으로 유의미한 것은, 필자가 이 논리를 개진한 이후에 시작된 한반도 비핵화 6자 회담이 그 구성 및 지역에 있어서 한민족 문화권의 지역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글과 문학이 있고 힘의 충돌도 있다는 사실의 증빙인 셈이다. 서둘러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글문학의 세계화는 이 한민족 문화권의 이미 개척된 텃밭을 소중한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핀 꽃과 거기서 맺은 열매는 생산된 지역과 환경은 달라도 근본에 있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품종이다.

다. 공감의 확장, 번역의 활성화, 시류의 활용

우리 옛말에 ‘꿩 잡는 게 매’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바탕이 굳건하고 치장이 훌륭해도 명패를 달아 내놓는 상품 자체가 뛰어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를 테면 우리말로 제작된 문학작품의 우수성으로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 형국이다. 우리 문학과 문화의 현장에서 작가를 소중히 여기고 우대해야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이다. 우리 문학에는 고은, 이문열, 황석영, 신경숙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작품이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많은 시인·작가가 있다. 이러한 그동안의 성과를 더욱 강화하고 새로운 문학작품의 진출을 발양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단계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그 줄거리에 별반 볼품이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의 이야기는 한 가족 구성원에게 있어 ‘엄마’라는 보편의 감성대를 예민하게 건드렸다. 물론 앵글로 색션계의 모녀관계는 이와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꿩’을 잡았다. 거기에다 번역도 좋았다. 우선은 작가가 세계의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과거 ‘민족문학’의 시대만해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논리가 통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국적을 가진 작가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전혀 일본적이지 않다.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열차의 시대다.
말하자면 작품 내용에 대한 공감의 문제다. 이 지점은 작가의 역량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기도 한다. 그러기에 좋은 작가, 지역과 국가의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감응력 있는 주제를 설정할 수 있는 작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국내에서 쌓아온 명성에만 의지해서는 어려운 국면이다. 작가는 오히려 겸허해야 하고 보다 소박한 자리에서 멀리 내다보는 ‘매’의 눈을 길러야 옳다. 예컨대 ‘대학생과 창부의 사랑’이라고 하자. 시시한 삼류 통속소설의 주제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쓰면 『죄와 벌』의 첫머리가 되고, 알렉산드르 뒤마가 쓰면 『춘희』가 된다.
다음으로 더 없이 중요한 숙제가 원활하게 잘 소통되는 번역이다. 하루키의 경우는 그 작품의 번역, 특히 영어권 번역에 있어 세계화를 손쉽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먼저 하루키 자신이 번역하기 쉬운 문체를 구사한다. 이는 무라카미 류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확연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키의 번역에 문학인생을 건 복수의 번역가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 문단에서의 번역가 대접이 작가의 밑 길로 가지 않는다. 한국의 문학작품이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번역에다 창작에 버금가는 강세를 두지 않는다면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근래의 한국문학번역원이 보여주고 있는 다각적이고 진취적인 사업들은 이 부문에 전례 드문 기대를 갖게 한다.
또 있다. 한글문학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시류들의 계기와 조건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는 한국 작가들의 사례는 보기에 따라, 그리고 활용하기에 따라 그 거론만으로도 상품성이 있다. 아무런 전조(前兆)도 없는 것보다는 거론이라도 되는 것이 백번 낫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의욕적으로 해외에 소개하고 번역된 작품을 출간하는 출판계의 노력도 상찬할 만하다. 우리도 놀랄 정도로 세계적 확대 양상을 보인 한류의 전파, 세계 각 대학의 한국어과 개설, ‘강남스타일’ 같은 노래나 케이팝 수용 등의 호재를 그냥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서는 안 된다.

라. 문화적 실과를 위한 경작법의 개량

세상 모든 일에는 저마다 그에 합당한 때가 있다. 한글문학의 세계화는 지금이 그 호기다. 앞으로의 기회를 잘 알 수 없으나 그동안의 경과에 비추어 보면 이렇게 ‘물 좋고 정자 좋기’가 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글문학의 전파를 위한 기본적인 전초기지로써 세계 각국에 한글학당이나 문화원을 운영하는 등의 외형적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은 자국의 대사관이 있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공자학원’을 열고 있다. 세계 각국에 개설된 ‘세종학당’은 2013년 말 51개국 117개소였는데, 공자학원은 108개국 900개소였으며 한국에도 21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어 보급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동일시기에 136개국 968개소, 독일어 보급기관인 ‘괴테 인스티튜드’는 93개국 149개소, 영국의 영어 보급기관인 ‘브리티시 카운슬’은 110개국 250개소를 각각 운영 중이다. 이들은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으며 왜 이 기관들이 필요한 지 암묵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한글과 한글문화의 세계화를 총괄하는 ‘세종학당재단’이 출범한 것은 2012년 10월이다. 그 이전에 여러 방향으로 활동하던 한국어 해외 교육기관들의 연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불과 6~7년의 기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소극적으로 망설이거나 더 미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가 삶의 장식이 아니라, 문화적 역량이 곧 국력인 시대다.
다음으로 작가의 창작실을 염탐하고 소리 없이 꾸준하게 지원하는 등의 내포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여러 방향의 추동력이 동시다발로 작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문화적 실과는 오래 공들여야 쓸 만한 소출을 약속하는, 이른바 까다로운 경작법을 요구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심기일전 농번기의 초입이다. 일찍이 15세기 중엽에 세종대왕이 당대의 백성을 위하여 그리고 자손만대의 내일을 내다보며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듯이 우리도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강국의 초석을 놓는 마음으로 이 일에 애쓰는 것이 옳겠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현황, 과제, 방향성을 살펴보고 이어서 한글문학의 정체성과 그 세계화의 길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서는 한국문학과 해외의 한글문단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반하는 방식으로 장차의 길을 모색했다. 해외에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환경을 이미 오래 전에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우리말로 글을 쓰는 문인들과 해외에서 우리말로 글을 쓰는 문인들이 동일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동일한 미래의 전망을 공유하며 나가야 한다.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이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기대하는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 양자 간의 상호 소통과 연대가 긴요한 까닭에서다.

* 이 글은 2015년 9월16일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