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성에 따른 이념만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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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언론광장 대표

한국언론의 현주소

한국언론의 최대문제는 정파성에 따른 이념 과잉이다. 정도차이는 있지만 모든 언론매체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사실관계를 규명하기보다는 먼저 소속진영에 유·불리한지부터 따진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으로 포장해 네편, 내편으로 가른다. 모든 사안을 이념으로 포장해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그 까닭에 언론보도를 보면 혼란스럽다.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론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현안을 분석, 해설, 해석, 비판하여 수용자가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가치중립적 사안에 대해서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해 보도·논평하는 바람에 이념혼돈 시대를 연출한다. 언론이 사회통합 기능을 발휘하기보다는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데 앞장 선 꼴이다.
이념과잉은 보수언론이 기득권을 향유하려는 데서 연유한다.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주류매체인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대표격이다. 3개사의 소유구조는 공히 1인중심의 혈연체제다.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도 소유구조가 비슷하다. 이런 세습체제는 사회변화가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믿는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말만 나오면 피해의식을 갖고 저항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그 이유로 모든 국가현안을 이념으로 착색해 정쟁화함으로써 지지세력을 규합한다. 김대중·노무현의 연이은 비주류 출신 대통령의 탄생은 권력이동을 의미한다. 김·노 정권에 대한 과도한 공격도 진보세력으로의 정권교체는 기득권을 위협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때로는 언론행위라기보다 정권타격을 겨냥한 선동정치에 가까웠다.

기득권 향유에서 비롯

그 대척점에는 진보매체라고 일컫는 경향-한겨레신문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두 신문의 시장지배력이 미약해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인터넷 매체가 가세하나 자본력이 취약해 영향력을 확장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SNS는 진보진영의 활동이 월등히 우세하다. 문제는 노년층이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보격차에 따라 노년층은 뉴미디어의 사각지대에 갇혀 있어 인터넷과 SNS의 영향력이 미치는데 한계가 있다. 여기에다 집권세력이 방송을 장악함에 따라 KBS, MBC가 보수진영에 가세하고 있다. 조-중-동이 의제를 설정하면 방송이 따라가는 형국이다.
정권에 포획된 주류언론의 기사가치 판단기준은 정권에 대한 유·불리이다. 유리하면 과장, 불리하면 축소하는 보도행태가 세월호에도 적용되어 언론불신의 임계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세월호의 침몰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은 구조작업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사고발생 즉시 조직적·체계적 구조작업을 폈더라면 모두 살릴 수 있는 사고였다. 달려온 어민들이 뛰어내린 승객들을 구해냈다. 해경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만 믿고 실내에 갇혀 있던 학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시점에서라도 해경이 탈출을 지시하고 구명뗏목만 풀어줬더라면 승객들이 뛰어내려 다 살 수 있는 사고였다. 그 시각 배안에서는 학생들이 카카오톡을 보내고 있었다. 사고초기 50분간 해경경비정 1척만 달랑 출동해 선원들만 구조했지 선체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달려간 어부들이 구조했다. 선내방송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뛰어내린 사람들이다. 해상구조작업만이 아니라 수중수색작업도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언론은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원구조라는 터무니없는 오보를 내서 구조작업에 차질을 빚는 사태를 낳았다. TV화면이 대형 크레인들과 밤새도록 터지는 조명탄을 비추며 사상최대의 수색작업이라고 떠벌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현장소식은 대안매체가 집중보도

크레인은 수색작업이 끝난 다음 선체인양작업에나 필요하고 조명탄보다 오징어잡이배의 조명이 훨씬 더 밝다. 해경은 해군의 잠수요원 UDT와 SSU의 잠수를 막았다. 해군특수부대 출신 UDT동지회는 해경이 구조작업을 막았다는 성명까지 냈다. 서울시청이 급파한 한강수난구조대도, 수중재호급기를 갖고 뛰어간 119중앙구조대도 돌려보냈다. 문화재청의 수중발굴선 누리안호도 대기하다 돌아갔다. 민간인 잠수부는 근접조차 못하게 막았다. 그런데 해경이 수상하게도 언딩이라는 해난구조업체하고만 손발을 맞췄다.
이 따위 짓을 하느라 선내에서는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고초기 언론은 해경이 왜 구조작업을 방해했는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주류매체가 보도하지 않는 현장소식을 대안매체가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SNS가 퍼 나르고 있었다. ‘국가가 국민을 포기했다’는 국민적 공분이 분출하는데 주류매체는 감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도자료에 매달려 마치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이뤄지는 것처럼 떠든 허위-과장보도가 그것을 말한다. 가족들이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는데 주류언론이 사실과 동떨어진 소식을 전달한 까닭에 노란 리본이 1년이 넘도록 소리없는 통곡의 행렬을 이룬다.
보수신문은 세습자본이 소유하고 광고주가 뒤에서 움직인다. 지상파 방송 중에서 KBS와 MBC는 소유형태가 사적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영방송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치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느 정권이나 권력기반을 다지려고 전파매체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군벌이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방송사부터 장악했던 것도 그 까닭이다. 1987년 체제 이후에도 어느 정권이나 우호적 여론조성을 위해 방송사에 친위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다. 보수신문이 대척점을 구축하고 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방송의 이용가치를 높이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국민의 눈치도 많이 봤고 내부의 반발도 만만찮아 수월하지 않았다.
신문시장은 친정권 신문 조-중-동이 지배하고 있어 의제설정을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단결한 지상파 방송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정권과는 달리 수구신문을 등에 업고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에 나섰다. 방송사마다 관제사장을 심어 공개적으로 방송의 공영성·공공성 해체작업을 밀어붙였다. 먼저 비판적인 사사 프로그램부터 없앴다. 오락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연예인도 더러 쓴 소리를 했다면 밀어냈다. 가시 돋친 말이 귀에 거슬린다고 뉴스 앵커, 토론 진행자도 멋대로 갈아치웠다.

권력의 노골적인 언론장악

노동조합이 저항하자 해고, 정직, 징계, 감봉, 좌천 등으로 보복의 칼날을 휘둘렀다. 정권에 다소라도 비판적인 인사들은 종북이니 좌파니 하는 딱지를 붙여 방송출연을 금지시켰다. 관제사장과 그 하수인이 점령군마냥 행세하는 사이 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기자들과 PD들은 공정방송을 외쳤다는 이유로 숱하게 거리로 쫓아났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인 대량학살 이래 가장 많은 해직 언론인을 양산했다. 박근혜 정권은 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이 이어지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 그 까닭에 이 나라에서 두 차례나 쿠데타를 일으킨 군벌은 방송사 마이크부터 뺏었다. 그 후에도 역대 정권은 방송장악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취임하자마자 촛불집회에 데인 이명박 정권은 작심한 듯이 방송장악에 혈안이었다. 비판적인 방송기자·PD들의 숨통을 죄는 한편 친정권 신문인 조-중-동-매에게 불법상태에서 종합편성채널 방송사업권을 나눠줬다. 여론독점-여론조작을 통해 통치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방송정책에 관한 전권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넘긴 것이 그것이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2009년 7월 22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재투표, 대리투표를 통해 방송법·신문법 개정안을 날치기했다.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보수신문에게 방송사업권을 주는 신문-방송겸업을 허용하는 의회쿠데타를 자행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절차상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국회가 재논의하도록 결정했다. 재입법하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이 언론악법에 근거하고도 모자라 온갖 탈법-특혜를 동원해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했다. 생산유발효과 2조 9,000억원, 취업유발효과 2만 1,400명이란 터무니없는 엉터리 예측으로 포장한 산업논리를 내세워 방송장악을 강행했던 것이다.

한국저널리즘의 실종

4개 종편사의 과당·출혈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저널리즘은 완전히 실종된 상태다. 하루 종일 근거도 불분명한 북한과 관련한 추측성 보도·논평을 쏟아낸다. 아니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사로 진보진영을 공격하며 시간을 때운다. 정치논평을 핑계로 야당인사나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 한다. 종합편성채널로 허가 받았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나 교양프로그램은 거의 편성하지 않고 재방송 비율도 아주 높다. 경영난이 가중되자 사실상 정치전문채널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를 이룩하자면 구시대의 적폐를 혁파해야 하며 그것은 개혁과 변화로 표현되어야 한다. 6월항쟁이 일어난 지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나라는 공정한·투명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개혁과 변화를 진보와 동가치로 보고 나아가서 진보를 종북으로 몰아 매도한다. 이념과는 상관없는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도 종북이란 말로 공격하면 집권당이 화답함으로써 이념과잉 시대를 연출한다. 이에 따라 정부정책을 비판·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언론의 기능이 마비된 모습이다.
보수란 인류가 창출한 전통적 가치를 유지, 승계한다는 뜻을 지녔다. 따라서 합법성이 결여된 군벌체제가 대의정치에 근거하지 않고 정권유지를 위해 조작해낸 정치관행·사회체제는 결코 보수가 추구할 가치가 아니다. 그런데 기성체제의 모순을 교정하려는 시민사회의 노력을 종북으로 단정해 붉게 물들인다. 체제홍보에 순치된 세대를 포용하는 수단으로서 유효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기득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보수정권의 유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위한 도구로서 모든 국가현안을 이념화하는 형국이다. 그 까닭에 20~30대 연령층과 50대 이상 노년층과의 이념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인터넷·SNS에 익숙한 청장년층과 노년층과의 세대격차가 갈수록 크게 벌어지는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보수언론과 집권세력의 종북몰이에 따라 남북관계가 휴전이후 최악의 대치국면으로 치닫는다. 북한은 소련붕괴 이후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스탈린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언론의 취재통로가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다. 그런데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정보를 통해 북한을 자극하는 언론의 보도-논평이 난무하여 국민을 착란상태에 빠트린다.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생존에 관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 한반도의 현실적인 선택은 비핵화를 통한 전쟁억지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은 금기시하고 북한 봉쇄만이 핵무기 포기를 유도하는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몰고 간다.
보수언론은 교육문제도 이념화한다. 이 나라의 교육은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다. 공교육이 붕괴되어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으면 대학입학이 어렵다. 교육을 장사로 아는 일부 사학재단의 전횡은 용인의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보수신문은 시장논리·산업논리에 근거한 교육제도를 옹호한다. 심지어 경쟁논리를 내세워 학력차별·학벌사회를 조장한다. 시장논리를 앞세운 교육은 빈민화정책이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과중한 사교육비를 부담하느라 허리를 펼 겨를이 없다.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 현실에서 사교육비 이외의 지출을 억제하니 내수부진으로 이어져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 또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출산율 저하의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보도자세는 달라지지 않는다.
기업은 고용창출을 통해 경제발전에 공헌하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기업을 정당한 이유없이 비난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기업의 부도덕성을 지탄해도 보수언론은 ‘반기업 정서’라는 말로 좌파가 주도하는 듯이 되받아 공격한다. 검찰이 불법행위에 연루된 재벌총수를 소환하면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그 속내는 재벌은 우파이고 수사를 촉구하는 세력은 좌파라는 식이다. 기업윤리에까지 이념을 개입시킴으로써 재벌기업의 황포와 부당거래가 근절되지 않는다.

권력은 교육문제도 이념화

보수언론은 사용주의 부도덕한 행위로 빗어진 노사문제도 이념으로 재단해 노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한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를 기업활동을 옥죄는 족쇄로 몰고 간다. 반시장주의니 뭐니 하다가 아예 좌파적이니, 사회주의적이니 하는 따위로 단정해 공격한다.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도 ‘반기업 정서’라는 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 같은 보도행태에 의해 경제민주화가 실종되어 버렸다. 그 결과 계층간·부문간의 발전격차가 커져 균형 있는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뉴스의 성격에 따라서는 심층·추적보도를 요구한다. 내용이 전문적이고 복잡하며 난해한 경우 정밀한 해설·해석이 필수적이다. 또 관료집단은 국민의 이익과 배치되는 정책집행이나, 책임추궁이 따라야 할 정책실패를 은폐하려는 속성을 지녀 추적보도가 중요하다. 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사회의 구조적 적폐 또한 집중보도의 대상이다. 그런데 TV뉴스는 일반적으로 단편적이고 나열적이다. 배경화면이 없는 뉴스라면 일반적으로 기사가치보다 축소보도한다. 따라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한 심층적·집중적 추적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발 프로그램은 거의 폐기되어 방송에는 친정권적 뉴스와 오락물이 넘쳐난다.
크고 작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현안이 정쟁의 도구가 되어 마찰음이 요란하다. 그것이 대립과 반목으로 증폭되면서 충돌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 소음의 진원지는 보수언론이 조장해내는 이념과잉이다. 이것은 언론행위의 영역을 넘어선 정치행각이다. 언론이 사회통합을 지향하기보다는 사회분열에 열중함으로써 막대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언론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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