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風)·수(水)·화(火) – 한·중·일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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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수학인·철학자, 대학교수
한국수학문화연구소 소장

1. 새로운 역사관

개(個)의 무의식과 집단의 질서

낱낱의 새, 들소의 단순한 행동이 무리 전체에 질서를 가져오는 것처럼 개인의 단순한 무의식적 행동이 집단적 질서로 나타난다. A. 스미스(A. Smith)는 ‘낱낱의 인간의 이기심’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가 차원의 사회복지와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이지 않은 신의 손”의 작용으로 설명했고, G. 헤겔(G. Hegel)은 ‘낱낱의 개인의 합리적 활동’의 결과가 “세계정신, 객관적 정신”에 귀착됨을 간파했다. 개(個)의 행동이 집단의 질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들 세계적 지성은 한결같이 개(個)의 단순한 행동이 집단차원의 질서를 자기조직화시킴을 지적하면서도 형성과정에는 미쳐 눈을 돌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포리아(해명불능문제)가 아니기에 원형사관은 집단무의식(원형)의 개념으로 그 과정을 밝힌다.
세포가 죽음과 탄생을 거듭하면서 생명체를 유지하듯이 낱낱의 구성원은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면서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민족공동체를 이룬다.
민족적 체험의 결과는 시대마다 고유의 문화를 개화하고 다음세대의 원형에 투영되어 되먹임(feedback)되며 민족구성원이 함께 겪은 각 시대의 충격은 원형의 인자가 되어 역사적 패턴을 형성한다. 원형사관은 원형에 대한 시련 속에서 미래가 전개된 것으로 본다. 오늘의 문화가 어제의 역사를 기반으로 개화하여 내일의 역사로 이어지는데 이는 복잡계 수학의 프랙털(fractal), 자기닮음(自己相化)이며 불교적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과도 같다.
복잡계(카오스)이론은 개(個)와 집단의 관계를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무의식에 확대시켜 민족차원의 문화의지에 관한 자기조직화를 설명한다.
S. 헌팅턴(S.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은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설명하면서 그 스승격인 A. 토인비(A. Toynbee)가 한국이 일본, 중국과는 별도의 문명권임을 지적한 것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중국, 일본만을 세계 7대 문명권의 요소로 간주했다. 민족원형을 무시한 그는 일본의 대세사관이 미일동맹을 파기하고 융성해지는 중국과 손잡을 것을 예상했다. 그의 『문명충돌론』은 문명갈등의 근본적 뿌리를 파악할 수 없었으며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2. 한·중·일의 원형과 문화

풍·수·화의 원형

생물은 진화로서, 인간은 문화로서 환경에 적응한다. 민족은 거대한 생명체이며 풍토와 지정학이 빚어낸 역사 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는 활화산이 없고 계절적 홍수도 수일이 지나면 해소된다. 사계절의 구분이 분명한 기후와 대재난을 겪지 않은 주민들은 자연스레 평화로운 심성을 길러왔다. 강력한 권력보다는 스스로를 믿고 인간은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사상을 가졌다. 김인후(金麟厚)의 『자연가』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하리라”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라 최치원은 이런 고유한 심성을 멋스러운 풍류로 표현한다. 이로서 한반도는 물(水)로 상징화된다.
일본은 지진, 화산폭발과 같은 천재이변이 수시로 발생하여 거의 20년 주기로 만 명 정도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열도가 수백 개의 지역단위로 분할되어 있기에 자연재해는 특정대상을 원망하기보다 빨리 잊고 지역 권력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대처해나갈 수밖에 없다. 평소에도 해마다 지역축제를 통해 주민전체의 단결을 촉구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킨다. 지난 동북지진에서 보여준 ‘재난으로 죽을 수는 있어도 마을의 미움을 받고는 못산다’는 일본인 의식은 열도의 자연풍토 때문이다. 이로서 화산열도 일본의 원형은 불(火)로 상징화된다.
중국역사는 요순시대 이래 치수사업에서 시작한다. 황하는 상류에서 많은 황토를 실어와 해마다 강바닥이 높아지고 그만큼 제방 또한 높아져 결국은 하상(河床)이 주변의 평지보다 높은 천장강이 된다. 제방의 한 곳만 무너져도 유역 전체에 걸치는 수해를 유발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강력한 황제가 요청된다. 황제는 방대한 관료조직과 천문, 토목, 관개의 과학기술자를 거느려야 한다. 한(漢)족과 오랑캐(胡)가 번갈아 왕조를 수립해도 농업과 치수를 위해 정권은 같은 왕조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광대한 대륙으로 인해 ‘하늘이 높고 황제는 먼 곳에 있었기에(天高皇帝遠)’ 농민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즉 상부의 정책과 하부의 실질적인 대책은 물과 기름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이러한 대하문화의 중국은 수(水)로 상징화한다.

삼국의 문화

민족원형(가치관)이 문학, 종교, 과학 등 지적·예능적 분야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포함한 민족생활에 관련되는 공통의 문화와 대외의식, 외교노선을 뒷받침한다.
민족의 문화기반에는 고유의 원형이 있기에 각 민족마다 문학, 정치, 역사 등을 포함한 고유의 문화를 형성한다. 동북아시대의 삼국(三國)이 유교 문화권, 한자 문화권 등 폭넓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으나 그 내용은 나라마다 한국은 바람(風), 중국은 물(水), 일본은 불(火)로 확연히 대조적이다.
한국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신바람을 일으키는 민족이다. 또 중국은 만리장성을 넘어오는 다른 문명을 중화(中華)사상의 큰 틀에 녹여버리는 융합적 원형을 품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은 단결, 무사상, 개척, 침략을 팔굉일우(八紘一宇)정신으로 미화해 왔다. 동양의 삼국은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정신적으로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중화(中華), 팔굉일우(八紘一宇)로 판이하다.

元型과 原型의 차이

융(C. Jung)은 히틀러 유켄트(히틀러 소년단)의 군화 소리에 대유혈을 감지하고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의 예언시를 인용하면서 제2차 대전의 비극을 경고했다(C. Jung, 『Wodan』). 그는 고대 게르만족의 신화 속 전쟁의 신, 보탄(Wotan)에서 독일인의 사애적(死愛的) 원형을 엿보고 그것이 파쇼적 시대상황과 어울려 전쟁으로 돌입할 것을 예감한 것이다.
융은 독일민족의 집단무의식을 감지했지만 오히려 이를 인류적 무의식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있는 대지모신(大地母神), 노현인(老賢人), 이상적 이성상(아니마, 아니무스)과 같이 변하지 않는 이데아적 존재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플라톤 철학의 변치 않는 이상적 존재 즉 이데아를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된 이상적 이미지(像)로 설명하며 원형(元型)이라 했다. 그의 원형(元型)은 개인의 무의식을 초월한 형태로 방대한 심리적 에너지를 지닌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류가 겪은 태고의 역사를 반영하는 신화는 현실의 민족을 설명하기엔 너무 일반적이다.

<표 1> 원형(原型)과 원형(元型) 비교
역사를 움직이는 실체 무의식 상징 시대적 특성 주요 영역
김용운 원형(原型)
ethno-core
민족적 무의식,
초기조건과
역사체험의 결과
민족어와 함께 변함
시대원형의 가변성
언어, 역사,
미래, 문화
C. 융 원형(元型)
archetype
보편적,
인류적 무의식
태지모신, 노현인 등
플라톤적 이데아와 같이 변함이 없음
집단심리학,
문화

원형(原型, ethno-core)은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고 현실적이며 가변성을 지닌다. 원형(原型)에 관한 변화이론인 원형사관은 이데아적 원형(元型, archetype)과는 전혀 별개의 내용이다. 원형사관은 민족자원의 시련에 대한 적응을 중시하는 진화론이자 언어와 원형의 관계를 밝힌 정신분석학이라 할 수도 있다.
한편, J. 라캉(J. Lacan)은 정신분석을 “정신의 변화이론”으로 보고 융의 이데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것이 대상을 집단 차원으로 일반화하면 가변성을 지닌 원형(原型)과 교차할 가능성이 있다.

3. 역사체험과 원형

한반도 지정학

663년 백강전투 이후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놓인 지정학의 역학에 시달리는 역사를 되풀이 해왔다. 중국대륙의 진, 한, 수, 당, 원, 청 등은 한결같이 통일을 이루면 곧바로 한반도 침략 시도했으며 마찬가지로 일본열도도 자국통일을 이루면 한반도를 침략해 왔다. 100년간의 일본 적국시대의 끝이자 도요도미(豊臣秀吉)의 조선침략으로 이어진 270년간 열도를 분할한 봉건제도를 와해시킨 명치정부는 조선식민지화를 감행했다. 대륙과 열도 사이에서 겪은 모진 역사적 시련의 결과는 어김없이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원형에 투영되어 인내천(人乃天)과 한(恨)의 심성을 갖게 했다.
역사체험은 민족구성원의 무의식에 결집되어 역사를 움직이는 의 의지를 지니게 한다.(『풍수화』, 김용운) 집단무의식에 새긴 상처는 집단차원에서 자기 조직화되어 분명한 성격을 지닌다. 또한 민족의 행로를 생각하는 것이기에 미래학의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림 1> ‌역사가 원형을 이루고 민족문화의 각 분야는 공통의 원형에서 파생한다.
원형과 문화의 관계는 실체와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진단

민족의 품위(국격, 國格)는 원형의지에 의한 시대상황에 대한 응전의 결과로서 개인차원의 교양에 해당한다. 시대마다의 문화는 연의 얽힘, 업(業)을 야기하며 어김없이 새로운 원형의 외피를 쌓아가는 되풀이를 계속한다. 민족신화에 나타나는 초월적인 존재의 성격은 융이 지적한 독일의 『Wodan』과도 같이 먼 조상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원형의 구도는 몇 겹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는 만다라이다.
또한 수시로 동심원의 다중구조를 뚫고 전, 전, 전 … 세대의 원형이 번뜩인다. 먼 옛날 부족사회에서 형성된 원형에 면면히 이어진 정치·사회적 상황의 결과가 반영되어 있다.

<그림 2> 원형의 단층도

4. 시대원형(정신)의 형성과 시련

동방예의지국 사상의 형성

조선시대의 역사적 경험은 대외적으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과 대내적으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사상이 한 쌍으로 상징화될 수 있다.
스스로 동방예의지국, 군자국이라 부르지만 그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이나 중국의 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중국인은 우리나라를 그렇게 불렀으며 공자도 뗏목이라도 타고 조선에 가는 것이 평생소원이라 했다. 조선유학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은 “지난 200년간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였으며, 정재두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인 동방예의지국으로 자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예’만 지키면 어디나 문명국이 될 수 있다는 조선화된 중화사상인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송시열은 우리나라는 바다 옆 변방이고 국토는 협소하지만 예교(禮敎), 음악, 법률, 제도, 의관(신분질서), 문물 등이 모두 중국식으로 문명화되어 있고, 아름다운 풍속은 중국에 맞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화인(중국인)은 우리를 소중화로 불렀다(『동몽선습(童蒙先習)』 총론, 숙종왕서 송시열발문(肅宗王序 宋時烈跋文)).
동방예의지국을 내세운 조선선비의 무의식에는 청(淸)에 대해 만만치 않은 적개심과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에 대한 보복심도 있었다. 청(淸)은 여진족 오랑캐 출신이지만 중원에 제국을 수립하고 명군을 배출했고, 특히 강희(康熙), 건륭(乾隆)은 중국 사상 최고의 황제로서 중화문화 진흥에 최대의 업적을 남겼다. 『강희자전(康熙字典)』, 『사고전서(四庫全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의 대전집과 사전의 출간을 통해 중화문명의 주인이 아닌 호족(오랑캐)에게도 문명이 있음을 온 천하에 알리고 중화문명의 보편성을 과시했다. 조선지식인은 오랑캐가 해낸 그 위업을 보며 조선인도 충분히 문명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문명적으로는 조선이 청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기백이 동방예의지국의 사상의 밑거름이다. 백강전투 이후 신라는 당에게 무력으로 맞서기를 포기하고 국가안보를 사대로 유지하자 무(武)가 예(礼)로 전환했다. 화랑정신은 고려 광종 이후의 과거제 채택으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바뀌어 갔다.
오랑캐 청이 명을 멸망시키자 조선은 명의 정통성 계승을 자처하고, 중국인도 놀라워할 만큼 문명적 사명감과 강한 자긍심을 발휘했다. 그러나 무의식의 밑바닥에는 굴절된 자부심이 있었다. 조선은 청에 사대하면서도 오히려 오랑캐로 멸시하는 모순과 조공국이면서도 경쟁의식으로 인한 예를 과시하는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사상은 민족적 자부심을 살리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사상은 벼슬과 양반으로의 향상심을 부추겼다. 이 두 목적의식이 조선사회를 지배했다.

근대화 개혁운동

중국은 1911년 제정한 신해(辛亥)혁명 신헌법에서 “중화민국 인민은 공자를 숭상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종교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는 구절을 병기했다. 그러나 이미 당시에도 대부분의 지식인은 반유교적이었다. 스카이(袁世凱) 군벌정치에 실망하고 궐기한 1918년의 5·4운동에서는 타도공노(打倒孔老, 공자, 노자를 타도한다)의 구호를 내걸었다. 5·4운동의 중심적 인물인 베이징대학 문학부장 천두슈(陳獨秀)는 중화 5년에 『신청년(新靑年)』을 발간하여 “충효절의(忠孝節義)는 노예의 도덕”이라 비난했다. 또한 오우(吳虞)는 “유교는 가정 도덕의 기본이지만 중국인에게 2천 년 동안 고통을 주어왔다.”고 주장했다. 루쉰(魯迅)은 작품 『공부자(孔夫子)』에서 과거준비에만 열성을 다해 온 수재가 혁명으로 제도가 폐지되는 바람에 폐인이 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주자학이 근대화 이후 아무 소용이 없었음을 보여줬다. 이들은 유교적 생활관을 통렬히 비판했고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은 삼민주의와 함께 타도공노(打倒孔老)를 표방했다. 이후 1960년대 말에 일어난 문화혁명에서도 ‘비림비공(批林批孔, 공자와 당시의 마오쩌둥을 반대한 린뱌오를 비판하는 운동)’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자학원을 중요학술기관에 설치하고 유교의 재인식을 시작한다. 중국유교는 그 원형에서 발생한 것이며 개혁은 하되 버릴 수는 없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문명개화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계몽운동이 벌어졌다. 천황이하 정부고관이 주도하고 야권에서는 민권운동가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 비롯한 여러 계몽 운동가는 자유인권운동을 벌렸다. 후구사와 유기치(福澤諭吉)는 봉권사상을 배격하기에 앞장섰다. 그의 탈아론은 유교적 가치관을 멸시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1920년대를 전후한 대정(大正) 데모크라시(Democracy)는 자유·인권운동이 되었다. 봉건국가의 무사기질은 곧 바로 군사대국의 정신적 기반이 되어 청일, 노일전쟁은 승리시켰다. 일본원형에 내제한 무사상은 변의에 따라 쉽게 버리고 바꾼다.
중국, 일본의 활발했던 근대화와 의식개혁에 버금하는 것이 조선에 없던 것은 원형에 내재한 강한 원리주의적 의식 때문이다.

오늘과 미래 한국원형

전세대의 민족체험(역사와 문화)은 오늘의 업으로서 현세대의 원형으로 이어지고, 현대의 민족체험은 새로운 인자가 되어 미래의 원형에 포함된다. 모두가 미래의 민족원형에 책임을 지니며 또 다음 세대에도 같은 패턴으로 넘어간다.
집단무의식은 시대적 조건과 민족의지를 반영하면서 변해간다. D. 디포(D. Daniel)의 작품 속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19세기 영국자본주의가 낳은 원형(합리정신)으로 절해고도의 환경의 도전을 이겨낸다. 원형과 시대적 조건의 관계는 민족이 계속 치러야 할 시련과 응전의 모험이며 그 결과가 다음세대의 원형을 형성한다.

<그림 3> ‌한국의 현세대가 미래에 넘기는 원형의 성격은 무엇일까!
원형사관은 오늘의 국격이 그대로 미래원형에 이어짐을 말한다.

가령, 신라는 당(唐)에 대한 사대로 무사적 가치관, 즉 충절, 용기의 화랑의 과단(果斷)성은 휘어지고 당(唐)의 과거제도, 사관(史官)의 벼슬을 최고시하는 등 율령제도의 가치관을 받아들였고 조선시대에 이어졌다.
조선은 망했으나 자부심과 향상심은 그대로 지니고 민족적 일체성도 지녔으나 근대화를 위한 개혁운동을 발생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동방예의지국’과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경직화된 전통으로 고수하고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근대화 바람을 외면하는 일을 민족성 유지로 착각하여 물리적으로 변했지만 의식은 그대로 남았다. 원형사관은 한국인에게 원리주의적 노선에 대한 성찰과 중국, 일본의 원형 이해를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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