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咸秉春 대사의 ‘해외동포에 대한 忠言’을 회상한다

― 재외동포저널 - 새시대 한민족의 광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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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춘 (李成春)
언론인, 전 고려대석좌교수
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장

1970년대 중반 한국은 이른바 유신체제 하에 국민의 입을 막는 긴급조치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강권(强權)통치로 인해 숨막힐 정도로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재미동포 사회가 수개월 안 들끓고 소연(騷然)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렇게 된 것은 일부 동포들을 겨냥한 한국 대사의 따끔한 충고와 평언(評言) 때문이었다.
장본인은 함병춘(咸秉春)대사.
그는 부임 후 미국의 몇몇 대도시에서 있었던 동포들 모임의 연설을 통해 교포사회에 대한 느낌과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외국에 이민을 온 이상 열심히 그 나라의 언어를 비롯해 역사와 문화 관습 법규(法規)를 익혀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해야 한다. 아울러 열심히 일하면서 이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존하는 것은 곧 이 사회와 나라를 위하고 나아가 우리 조국을 위하는 일이다. 그런데 현지에 정착하기 보다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고 일부 동포들은 본국 정치에 과응(過剩) 관심과 과열 반응을 나타내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함병춘 대사는 누구인가.
1932년 서울 출생으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을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1959년에 귀국해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된데 이어 1974년부터 4년간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그후 외무부 본부대사를 거쳐 연세대 교수로 복직한 그는 신군부의 요청에 의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임중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 때 북한 테러범들이 자행한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순직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을 일으킨 민족지도자 48인의 1인으로 3대 부통령(1952~1956)을 역임한 함태영(咸台永, 1873~1964) 선생의 막내 아들이다.
함대사의 강연 내용이 전해지자 극성 교포들은 워싱턴 대사관에 몰려와 ‘재미동포들을 모욕한 함대사는 사과하라’ ‘정부는 함대사를 파면하라’ ‘대사직을 자진 사퇴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벌였다.
당시 반(反)정부성향의 교포신문들은 유신철폐-박정희 대통령 하야-함대사의 소환(召還)등을 요구하고 선동하는 기사로 몇 페이지를 뒤덮다 시피했다.
이 무렵 국회출입 기자였던 필자는 함대사의 발언의 취지를 옹호하는 짤막한 기사를 한국일보에 실었다.

“…세계 어느곳에 있던 해외에 이주한 동포들이 고국의 사정과 중요한 당면 현안에 대해 잊지 않고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조국의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과 민주정치의 발전을 기원하는 애국충정은 깊이 이해하고 높이 평가한다. 고국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을 경우 바로 잡으라고 충언(忠言)을 하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민을 갔으면 생업(生業)에 전념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복잡하고 시끄러운 국내정치에 열을 올리기보다 현지 사회의 주류(主流)에 진입해 정주(定住)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고국의 동포들도 여러분들의 현지 정착을 기대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랜 미국 유학생활을 경험한 함대사도 동포들을 위해 이런 취지와 충정으로 말한 것으로 이해하는데 ‘파면’ ‘소환’ 운운은 말도 안된다….”

기사가 나가자 미국의 여러 대도시로부터 ‘가만두지 않겠다’ ‘죽여 버리겠다’는 내용의 여러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LA지역에서는 한국일보에 “이 사람이 언제 미국에 오는가. 혼을 내주겠다”는 전화가 걸려 왔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신문사를 나와 대학에서 강의하던 2000년대 중반 뉴욕에서 그곳 동포들 모임의 요청으로 국내 정치상황에 관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에 이어 질문-답변이 끝날 무렵 중후한 인상의 70대 초반의 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미주(美洲) 한국일보를 통해 오랫동안 이 논설위원의 정치 칼럼을 읽어온 애독자다. 과거 기사에 관해 하나 묻겠다. 이 위원은 옛날 함병춘 대사의 발언을 두둔하는 기사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그 생각이 변함 없는가?”
아니 30여년전의 일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필자로서는 골목에서 딱 임자를 만난 느낌이다. 청중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필자의 해명을 기다렸다.
필자는 먼저 처음 듣는 청중들을 위해 당시 함대사의 강연내용과 필자가 썼던 기사의 요지, 그리고 소수 였지만 고국의 정치를 걱정하는 일부 ‘정치 광(狂)팬들’의 항의와 규탄 데모 등을 설명했다.
지금도 이민(移民)간 나라에 푹 빠져서 그 나라의 사회와 생활환경 등 모든 것에 사실상 동화(同化) 되는 것, 그 나라의 사람이 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 그렇게 해서 그들의 중심적인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또 당시는 어느나라이건 대다수 이주(移住) 동포들이 제대로 현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뿐더러 어쩔수 없이 생계(生計)와 생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형편에 ‘정치광(狂)’에 가까운 극소수의 동포들의 행태에 대해 충고한 함대사에 대한 지나친 반박 공격에 필자는 자제(自制)를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냉전(冷戰)체제가 해소되고 세계화시대, 글로벌(Global)시대, 정보화시대에 진입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나라 사이의 국경(國境)이 무너졌고 각 분야간의 장벽이 무력화되고 말았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뉴스와 정보가 매일 매시간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시대, 개인이건 국가이건, 기업 또는 단체 모두는 주변은 물론 세계의 상황을 알아야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국가를 초월하여 각국의 국민들, 세계인들의 공동생존(生存)의 터전이자 공동활동의 광장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시대-정보화시대에 모든 나라들 특히나 조국의 사정에 관해 알고 관심을 쏟고 적극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필수적인 것이다.
복수국적(複數國籍)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는만큼 오늘의 세계화시대 정보화시대에 어디에서 살건 모두가 슬기롭게 공존공영(共存共榮) 하기 위해서는 보다 활발한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동포들은 조국과 보다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대충 이런 답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근대에 있어 우리 국민들의 해외진출은 대체로 1860연대초 극심한 가뭄으로 수확을 하지 못한 몇 세대의 함경도 농민들이 조정(朝廷)의 월경엄금(越境嚴禁) 고시를 외면하고 몰래 러시아 영토인 포시에트(沿海州)로 건너가 농사를 지은 것을 효시로 삼는다.
현재 해외동포수는 730여만명으로 전세계 6대주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도 동포들이 진출해 정착하고 있다. 굶주린 함경도 농민들이 월경한지 160여년만에 해외이주 동포가 730만여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가히 경이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야말로 거대한 국력(國力)의 신장이요 확장이다. 게다가 국내 동포 5,000만명과 730만명의 해외동포들이 같은 시간에 TV, 인터넷,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시청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 현상을 공유(共有)할 수 있는 엄청난 결속력이자 공감대임이 분명하다.
대한민국도 해외동포들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제한적이지만 선거권을 허용함으로서 고국과 해외동포들간의 유대관계는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재외동포저널‘의 창간은 고국과 해외동포들은 물론 해외동포들간의 교류, 소통, 대화, 협력을 촉진하는 ‘새시대의 한민족의 광장(廣場)’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서로 지리적으로만 떨어져 있지 국내동포와 해외동포의 구분과 보이지않는 벽(壁)이 허물어질 날도 멀지 않다.
‘재외동포저널’은 대한민족을 더욱 끈끈하게 하나로 묶는 이러한 대과업을 추진하는 등대이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